여름답지 않은 날씨이다.
적당한 고운 햇살에 선선한 바람이 창가를 통해 불어 들어왔다.
날씨가 적당해지면 지난번에 이케아에서 산 분필로 그림을 그리기로 딸아이와 약속을 했었다.
그리고, 오늘이 그 적당 함이었다.
이케아 분필과 물통을 준비하고선 딸에게 물었다.
"딸, 우리 밖에 나가서 분필로 그림 그려볼까?"
기다렸다는 듯이 아이의 대답했다.
"좋아! 그리고 나비도 잡을래!"
집 근처의 어린이공원으로 향하는 길.
마치 자기가 제일 잘 아는 길을 자랑이라도 하듯이,
아이는 한참을 앞서 걸었다.
도착하자마자 노란색 분필을 꺼내 바닥에 쓱싹쓱싹 그림을 그렸다.
주위의 사람들의 관심도 딸에게 닿았다.
그 눈길이 느껴졌는지 그림을 하나 그리고 슬쩍 주위를 살폈다.
첫 그림은 바닥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는 귀여운 개미 같은 그림이었다.
쓱, 쓱.
거친 바닥표면에 분필이 갈리며 그림이 그려지는 촉감이 재미있나 보다.
벽돌 하나가 한 장의 도화지인 듯 하나하나 그림으로 그려나갔다.
어느덧 시간은 흘러 여러 가지 그림들이 벽돌 바닥에 채워져 갔다.
저녁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사람들도 다 떠나 공원은 조용하기만 했다.
"아빠, 손에 분필이 있어!"
아이는 손에 뭍은 분필 자국이 지저분하기보다 재미있나 보다.
손바닥을 펼쳐 보이고선 활짝 미소 지었다.
재미있게 놀았으니 정리를 할 시간이다.
개수대에서 가지고 온 물통에 물을 채웠다.
무겁지도 않은지 아이의 걸음걸이는 붓을 바닥에 콕콕 찍듯 가볍고 경쾌했다.
꽐꽐 쏟아부은 물이 그림 위로 떨어졌다.
분필은 물에 쓸려 형체를 점점 잃어갔다.
물을 채우고 붓기를 여러 번 하니 그림들은 점점 사라졌다.
아이의 눈에는 사라진 그림에 아쉬움보다 깨끗해진 바닥에 뿌듯함이 느껴졌다.
그냥 집으로 가면 아쉽지.
그 이후로도 한참을 놀이터에서 놀고서 집으로 향했다.
우리가 떠난 놀이터는 마치 분필로 그려진 바닥에 물이 부어진 것처럼 사람들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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